강남 노래방: 수많은 소리로 숨 쉬는 공간.

그곳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네온사인이나 인파, 혹은 손님을 태우려 쉴 새 없이 오가는 택시의 행렬이 아닙 강남 가라오케 니다. 바로 ‘소리’입니다. 한밤중이든, 궂은 날씨든, 혹은 거리가 한산해지는 금요일 밤이든, 강남은 언제나 노래로 웅성거립니다. 그 소리는 지하 계단과 3층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골목길과 상가 곳곳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것은 오늘 밤 마음껏 목청을 높이기로 결심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입니다. 한국 노래방에 대해 가기 전부터 글이나 영화를 통해 접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좁은 계단을 내려가 묵직한 문을 열고, 오직 노래만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주한 현실은 그 무엇으로도 미리 준비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카운터에 있던 여성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내게 열쇠와 영수증을 건넸습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진동하는 문들을 지나고,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열정적으로 발라드를 부르는 사람들의 방을 지나쳤습니다. 마침내 내 방을 찾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방은 아주 작았습니다.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TV 화면이 전부였죠. 벽은 낡은 장식재로 덮여 있었고, 바닥은 좁고 낡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나만의 공간이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그곳은 오롯이 나의 공간이었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노래 책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곳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수많은 곡을 갖춘, 깊이 있고 의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선택지에 압도된 채 무심코 목록을 넘기던 중, 수년 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노래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우울하고 상실감과 실망이 묻어나는 곡이었지만,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곡을 선택했습니다. 저렴하고 빈약한 음질의 MIDI 반주가 시작되었고, TV 화면에는 여러 언어로 가사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목소리는 작고 낯설게 들렸지만, 방 안은 그 소리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기다려줄 뿐이었죠.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풀려나가는 듯했습니다.
강남의 노래방이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곳이죠. 걱정을 없애거나 의문을 해결해주거나 빚을 갚아주지는 않지만,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그곳은 숨기에는 너무 좁지만, 굳이 애써 꾸며낼 필요가 없을 만큼은 은밀한 공간입니다. 손에 쥔 마이크는 내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일깨워줍니다. 음정이 불안하든, 목소리가 갈라지든, 혹은 기계 외에는 아무도 듣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선택한 노래는 일종의 고백과도 같습니다. 평범한 대화로는 차마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방법인 셈이죠. 침묵하고 싶을 땐 사랑을 노래하고, 화가 날 땐 분노를 노래하며, 노래가 불러일으킬 감정을 떠올리며 기쁨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나는 멈추지 않고 한 시간 내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부터 난생처음 들어보는 노래까지, 가리지 않고 불렀습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과 함께 남녀 파트를 오가며 듀엣을 불렀고,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록 음악을 부를 때는 마치 수많은 관중 앞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행동했고, 발라드를 부를 때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리게 두었습니다. 노래가 끝난 뒤의 점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방금 무엇을 만들어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기계는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